2009. 12. 15. 16:34 diary

외할아버지 돌아가심.


띠동갑인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어제 저녁에 돌아가셨다.
늦은 밤, 집에서 온 전화의 시작은 일상점검에서 시작해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렸다.
쉰둥이를 보셨다면, 가능했을 48살의 차이는 외장손자에게는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 시간간격이였다.

너무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한 상황은 너무나 먹먹하다. 지금 앉아있는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고, 다만, 재량으로 일찍 나와서, 찾아뵐 생각이다. 올해 생신때 뵙고, 그 이후에는 뵙지 못 했는데, 어릴 적에는 거의 매주 가다시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찾아가는 빈도는 뜸해졌다.
아쉬운 것은 많겠지만, 제일 큰 것은 증손녀를 못 보여드린 것이 참 안타깝다. 날이 추워서, 아직 어려서, 여러가지 제약이 있었지만, 그래도 아쉽다.

사람이 오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돌아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맘 속으로 각오를 하고 있는 친할머니보다 정정하시던 분이 먼저 먼 길을 떠나셔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96년 군생활할 때, 돌아가셨던 친할아버지보다는 충격이 덜하지만, 귀여워해주시던 분들이 한 분 한 분 저 세상으로 가시는 것은 맘의 준비가 없고서는, 힘든 상황을 접하게 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무사히 잘 가시기를 기도하면서 마무리한다.
편히 쉬세요. 아멘.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자리  (2) 2010.01.17
2010년 1월 3일 외할머니 생신  (2) 2010.01.07
송년회를 다녀오다..  (0) 2009.12.09
이태리어에 도전하다.  (0) 2009.12.03
2006년 9월 28일 동서대항전, 추억을 담다(2)-저녁 기록  (0) 2009.12.01
Posted by 열심히 달리기
국기 태권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국기 태권도, 우리 어렸을 적에는 거의 한 번씩은 태권도장에 다녔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신문에서 태권도에 대해서, 기고문이 있길래 읽어봤다. 기고자가 워낙 특이하신 분이라.
'이 분은 뇌호흡으로 일약 스타가 되신 분이 아니신가? 그런데, 어이하여 태권도에 대해서 글을 쓰셨을까?'라는 궁금증도 같이 일었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에 태권도장을 다니면서, 1품(어린 애들에게는 단 대신에 품을 수여합니다)을 받았고, 발가락 부상 이후, 운동과는 바이바이를 외치고 살다가, 대학4학년 때, 후배들과 같이 다시 도장에서 수련을 시작했지요. 이 때, 2단을 수여받았습니다. 그 바로 전인, 대학 2,3학년 때는 단학선원을 다녔죠.
이 단학선원이 지금 기고자인 이승헌 선생이 만든 단체입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태권도에 관해서만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읽은 문제의 기고문
[기고] 변화의 기로에 선 태권도     글쓴이: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08/2009120801656.html?srchCol=photo&srchUrl=photo6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읽다보면 좀 흠짓 놀라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요.

우선, 현실을 살펴볼까요? 세계 188개국에 진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수련생들을 배출했구요. 배출하고 있구요. 하지만, 2020년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에서 빠질 수도 있는 위기를 맞고 있죠. 또한 국내 수련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들도 감소하는 상황입니다.

태권도의 변화를 주려면, 1. 도장의 변화, 2. 모든 연령에서의 수련 권장을 말한다. 맞는 입니다.
모든 연령으로 수련대상을 늘린다. 이것은 아주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즘처럼 태권도장이 어린이를 위주로 돌아간다면, 성인이 가고 싶어도 접근하기 어려울 껍니다. 가서 혼자 품새를 할 꺼가 아니라면, 어린 아이들과 대련하기 힘들겠죠? 제 경험으로도 저녁에 나오는 고등학교 형들도 맨날 사범님하고 겨루기를 했던 것 같네요. ㅡ.ㅡ (그 형들.. 지금 40줄에 들어섰겠네요.)

그런데, 이 글에서 말하는 도장의 변화는 태권도장 마저 단학선원과 비슷하게 만들어버리려는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분명 태권도가 국기라고 한다면, 기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도 가르키는 것도 맞는데, 그 방식이 마치 단학선원과 흡사한 느낌이 든 것은 저 뿐일까요??

태권도의 육체적인 단련과 정신적인 단련의 극대화를 위해서, 국혼의 살아숨쉬는 심신수련법이자 무예로 탈바꿈해서, 홍익인간을 키우는 정신과 만나야 한다고 했다. 이 문제는 앉아서 이렇게 타이핑한다고 바뀔 만한 문제는 아닐 것인데요. 현실에서의 태권도장에서는 기술을 전수하지, 정신적인 면은 그렇게 크게 강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홍익인간, 분명 단군 왕조 이래, 우리 민족이 새기고 살아가야 하는 신조이기는 하지만, 태권도장에서 갑자기 홍익인간을 외치기에는 이상하고... 어려운 문제이네요.

그럼, 앞으로 도장의 변화는 정신적인 면을 지금보다 많이 강조를 해서, 건전한 정신의 지닌 사람을 키우는 것과 전 연령의 인원이 즐길 수 있는 도장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나이 들어서, 태권도장에 들어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위주로는 활로를 찾기가 힘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또한 성인을 주로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구요. 어디서든 균형이 매우 중요한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네요.

마지막으로, 기고문 처음엔 들어가는 부분에서, '대통령과의 대화'로 시작해서, 국제위상을 지나, 우리 상품의 가치를 거쳐, 태권도 현실을 우려했다. 여기까지 도입한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걱정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변화를 유도하고, 그 변화가 정신수도의 장으로 몰고가서, 아류 단학선원화 된다면 그것은 변화의 기로에 선 태권도를 제대로 한 번 찌끄러뜨리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걱정이 쫌 된다.ㅡ.ㅡ)

태권도는 태권도 나름의 무술 또는 무예적인 면(개인적인 생각에는 태권도는 손사용이 극히 제한되어있다.)을 발달시키면서, 전연령의 수련화, 정신적인 면 강화를 시키면서, 세계속으로 퍼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신적인 면은 외국에서 더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변화의 시기에 태권도가 올바르게 살아남고, 세계속으로 퍼져나가야 함은 국기(國技) 태권도를 얼마나 알리고, 수련할 수 있게끔 만드는 여러 관계자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짧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능 2번이라....  (4) 2010.01.04
숭례문 복원  (2) 2009.12.15
불을 쫒는 사람들, 화재조사관  (3) 2009.12.08
관광 한국 BBB - 세계최초,유일 휴대폰 통역문화 자원봉사단  (0) 2009.11.16
도요한 신부님  (0) 2009.11.10
Posted by 열심히 달리기

요즘 쌓여있는 신문들을 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버려버리면 그만인 것을 끌어안고 살다가, 보면 참 웃기는 경우가 많다.

10월 1일 목요일 조선일보에 나온 C씨의 에세이를 읽었다. 에세이에도 이혼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두 분의 관계를 안 것도 어저께 무릎팍동사를 보고였다. C씨가 이혼을 하던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사실, 신문을 보다보면, 여러 이야기가 있다. 한참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타이거 우즈의 포효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로부터 몇 십일 뒤면, 굉장히 난처한 일을 당할 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이 사건에 비하면, 10수년 전에 일어났던, 일은 꺼리도 되지 않는가보다. 오늘 아침 인터넷을 보니까... 시간이 약인가보다.

조영남씨의 에세이 '딴짓' 예찬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ID=2009100100100&srchCol=pdf&srchUrl=pdf3

여기서 말하는 C씨는 가수 조영남 씨를 말한다. 무릎팍 도사에서 윤여정씨가 말한 것을 써봤다.
시간이 지나면서 C씨로 지칭하게 된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너무 강렬한 C씨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뭐 사람이 어쩌구 저쩌구가 아닌다. 난 두 분을 모두 잘 모르기 때문에 글을 읽고, 어저께 무릎팍이 떠올랐을뿐....

그래도 대단한 것이 딴짓을 해도 연예인 중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면서, 베이징에서 초청전을 했다는 것이다.

Posted by 열심히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