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야외에 나가서 밥을 먹을 일이 생겼다.
애들이 있는 집은 알 것이다. 애들을 데리고 야외에서 밥을 먹으러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준비가 필요한 일이지를.....
그런데... 오골계를 먹기 위해서 차를 타고 남한산성쪽으로 이동을 했다.
계곡과 붙은 음식점. 음식 먹고, 물놀이 하고, 음식 먹고, 물놀이 하고...

그런던 중, 딸이 물총을 가지고 놀았다. '저 물총은 과연 몇 발이나 나갈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예전에 어렸을 적에 만졌던 물총은 대개 고무로 틀을 잡은 고무형 물총이었고, 좀 좋으면 펌프형 물총으로 기억하는데.
요즘 물총은 장총형, 물탱크를 짊어지는 장총형 또는 권총형. 참 다양하게 물총이 나와있다.

권총은 알기로는 호신무기로 짧은 사거리, 유효사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있다. 자세한 것은 백과에 물어본다.
두산백과 참조: 클릭

백과를 참조해서 보신 분들이라면, 리볼버 형과 자동 권총으로 나뉘는 것을 보셨을 것이다.
총에 따라 다르겠지만, 리볼버 형은 대개 6발 정도가 장전되겠고, 자동권총은 15-17발 정도 장전되겠다.
한참 사격장을 자주 다녔을 때는 38구경 리볼버를 자주 사용했는데, 자동권총은 자동으로 장전은 되지만,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슬라이드가 뒤로 밀릴 때 총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그래서 이왕 쏘는 거 좋은 점수가 나오는 리볼버를 많이 선택했었다.
롯데월드 사격장이 뽀로로테마파크로 바뀌면서 없어져서, 명동에 있는 사격장으로 나가게 되면서 점점 사격빈도는 낮아져만 갔다. 마지막 사격일자는 작년 10월이었나보다.
이전 글: 2012/10/10 - [사격일지] - 27번째 사격 -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명동사격장, 38구경 4인치

계곡에서 놀던 중, 딸에게 물총을 건네받았다.
이 물총을 격발하면 몇 발이 나갈 것인가?? 물총에 물을 넣고 쏴봤다.. 한 발, 두 발, 세 발,, 어... 생각보다 많이 나가네...
쏘면서 든 생각이 왜 런닝맨에서 유재석이 권총형 물총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됐다. 물총은 총처럼 적은 총알이 장전이 되는 것이 아니였다...!

격발을 하고 있노라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양들의 침묵'이 생각이 난다.
소설 '양들의 침묵'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샀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세세한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FBI 신참요원들은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는데, 구보시 요약한 숫자 3개로 요약된 상황을 부여받는데, 그 숫자를 받고, 그 숫자에 합당한 상황을 설명을 해야하고, 그 상황에 맞는 대응법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보중이기에 힘도 드는 상황에서 암호처럼 코드화된 3자리 숫자를 듣고, 생각하고, 대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격발훈련이었는데, 양손 각각 1분이던가, 2분간 몇 번의 격발횟수를 넘겨야 한다고 했었다. 양손으로 연습하는 이유는 거의 예상하겠지만, 주로 쓰는 손을 다쳤을 때, 나머지 손으로 사격을 가능하게 하고, 명중율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했다.
일반 생활속에서 격발훈련은, 총이 없어서 할 수 없지 않는데, 그에 못지 않는 주먹 쥐었다 폈다를 하면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 악력은 총도 견고하게 손 안에 잡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격발시 충격도 완화해주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양들의 침묵에 나왔던 두 인물, 죠디 포스터와 안소니 홉킨스는 그 뒤로 영화가 나오는 족족 보기는 하는데, 최근에 안소니 홉킨스가 나온 RED2를 봤다. 많이들 늙으셨더라.. 하긴 양들의 침묵이 십몇년 전 영화니...아니 20년은 넘은 것 같다. 아....ㅎㅎㅎ
양들의 침묵
감독 조나단 드미 (1991 / 미국)
출연 조디 포스터,안소니 홉킨스
상세보기

정말 20년이 넘었구나... 고1때 영화....

이렇게 격발을 하면서 숫자를 세어보니, 몇 번의 실험으로 저 권총에 들어간 물은 모두 77±1이었다. 놀라웠다. 저렇게 조그마한 총에서 77발이라니... 참 간단하고도 재미있었던 실험이었다. 뭐 거창한 것만 실험은 아니니까....요~

결론적으로 물총싸움을 할 때, 권총형을 선택할 때의 장점은 소지의 용이성이 가장 클 것 같고, 단점은 사거리 정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도 살짝 이야기했지만, 런닝맨에서 권총물총을 가지고도 이길 수 있는 것은 소지, 은폐의 용이성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ㅎㅎㅎ. 이것으로 물총 실험 끝. ^^;

 

 




Posted by 열심히 달리기

다시 블로그로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 그동안 핸드폰 게임인 "베네치아 스토리"에 빠져서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무역을 하느라 블로그를 한동안 등한시 했다.
그로 인해서, 나의 핸드폰은 뜨거워졌고, 밧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재장전(!) 되었다. 그러다가 레벨이 오르다보니, 여유가 생겼나 아니면 지겨워진 것일까... 다른 것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시 블로그로...!!!
스포츠 신문을 보다가 전시회에 눈이 갔다.
박찬호. 박찬호 선수, 박찬호 해설위원, 박찬호씨, 찬호형. 뭐라고 불러도 어색하지만... 존칭 생략하고.
박찬호의 야구콜렉션을 전시한다고 나와있었다.

달리기가 생각하는 콜렉션의 의미는 그것들이 가진 의미와 이야기들이다. 시간과 그 물건이 합쳐질 때, 뿜어지는 묘한 향기?
특정 사건이 벌어질 때, 그 순간에 있었다는 것이 주는 의미가 클 것 같다.
그래서 이 전시회는 가보려고 한다. 일단 부암동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서울미술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검색을 해본다.

검색창에 "부암동 서울미술관"을 검색하면 검색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따라 들어가면 홈페이지가 뜬다.

서울미술관 홈페이지

서울미술관 홈페이지

서울미술관 홈페이지 http://seoulmuseum.org/nr2/?c=visit/12을 방문하면 에 위치했는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잘 가르켜준다.

거기에 부속건물로 석파정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쇄국정책"으로 유명한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호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예술가로, 난을 잘 쳤다고도 한다. 한 면만을 보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인가보다. ㅎ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가 봐야겠다. 근대유물이라고 한다. 자연보호물도 있고.
풍경이 정말 멋지다고 쓰여있다. 그건 가봐야 알겠다.

별서가 무얼까? 사전을 찾아봤다.

쉽게 말하면 별장이랄까??

20013년 7월 11일부터 11월 17일까지니까 여유롭게 갔다와도 될 것 같다. 주말에 나들이 한 곳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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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하고 나니, 생각나는 사진 하나..
지난 3월에 갔던 절두산 성지에서 본 척화비 하나. 이 역시 흥선대원군이 세운 것이었다.

절두산 성지에서 본 척화비 설명

절두산 성지에 있는 척화비

블로그 포스팅을 하지 않았을뿐 이야기꺼리는 수없이 쌓여있는데.. 그걸 어떻게 풀어야할 지 고민된다.
그 중에 한 가지인 지난 3월에 방문했던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와 절두산 성지 사진 중 두 장이다.
헐버트 박사 이야기로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풀어나가면 될 것 같다.
다시 열심히 포스팅하자고 다잡아본다.

Posted by 열심히 달리기
이야기의 시작은 2011년 6월 20일 신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선일보 2011년 6월 20일


6월을 호국의 달이라고 해서 현충일도 있고, 6월 내내 알게 모르게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6.25 에 대해서 한 번씩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게된다.
2011년 6월 20일 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30년째 홀로 바친 국화..라...
무슨 이야기일까... 읽어보니. 음... 이런 분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서, 정말 국가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 아니면 꽃 줄 이 없쟎소"

기사를 다 읽고 든 생각이 88살의 이 할아버지가 언제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가보고 싶었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겠지만.... 궁금했다. 유치원 이후로는 가 본 적이 없는 그 곳. 하지만 그 앞은 2주일에 한 번씩은 지나가는 그 곳. 국립현충원.

이미 작년 현충일에 나온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에는 국립묘지가 8군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읽어볼 포스팅:
2012/06/07 - [하고 싶은 것/가고 싶은 곳] - 국립묘지 순례하기?

그 중, 제일 오래되었고, 6.25 전사자들부터 안장된 곳.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있는 국립현충원을 가보고  싶었다. 정말로. 가끔 신문에서는 현충원이 산책코스로도 좋다고 나오던데... 느낌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 생각을 옮길 기회가 왔다.
애엄마는 친구를 만나러 가고, 애 둘이 내 손에 들어왔다. 갈 곳은 많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애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에 국립현충원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묘지 위치를 확인했다.
신문 기사에 나온 이름, 전사지역을 알고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1묘역 - 5묘단 - 103묘비. 사진 속 묘비에 씌여진 103이라는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도착 후, 무인검색기로 자세하게 위치를 파악했다.

근데, 아뿔싸... 너무 급하게 출발하느라, 국화 한 송이도 없었다. 어떤 아저씨가 국화를 들고 지나가시길래, 물어보니, 저쪽에 매점과 화원이 있다고.
현충문을 지나서, 매점과 붙어있는 화원에서 국화 한 송이를 구입해서, 다시 길을 거슬로 올라왔다.
올라올 때는 현충문을 지키는 위병교대식도 보게 되었다. 육군에서 해군으로 근무교대가 이뤄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잠이 든 첫째는 일어날 줄 모르고 계속 잔다. 유모차가 있으니, 괜챦겠지라고 생각했다. 움직이는데는 느렸지만, 그래도 밀어서 움직이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단지 팔이 아팠다. 둘째는 혹시 몰라서 아기띠를 준비했다.

11묘역. 이 곳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착해서 뒤를 돌아보니, 그 곳의 위치는 흔히 말하는 배산임수의 자리?
11묘역만 찾아가서 묘비 번호만 알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상등병 정학수. 기사에서는 일병이라고 써있었지만, 묘비에는 상등병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묘비 뒷면에는 화천지구에서 전사했다고 씌여져 있었고.


텔레비젼을 보면 묘비를 어루만지면서 닦아주는 장면을 보면서, 왜 저렇게 닦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닦을 수 밖에 없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전부였다. ㅡ.ㅡ; 물티슈를 꺼내서 묘비와 묘판을 닦고, 국화를 올리고 잠시 묵념을 했다.
산 중턱까지 열심히 걸어온 둘째는 여기저기 궁금한지 돌아다닌다.
 

뒤를 돌아보고 핸드폰으로 파노라마를 찍어봤다.

한강이 보이는 이 곳.. 정말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는 못 오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와서 국화를 놓고 갈 수는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누군가 기억을 해주는 거니까... 일 년에 한 번도 안 찾는 쓸쓸한 곳이 안 되게 하려고 노력해봐야겠다.


내려와서 현충문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으나, 너무나 머리가 크게 나온 관계로 셀카는 생략하고, 현충문 사진만 올려본다.
현충문 사진. 느낌이 살아있다. 문 위로 구름이 너무나 예쁘기에...

돌아가려고 차문을 여니, 깨어난 첫째.. 나이스 타이밍이다.... 하하하...

이렇게 찾아간 첫 번째 국립현충원 방문은 끝났다. 다음은 대전 현충원을 기회있을 때 가봐야겠다.
대전 현충원에는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명은 개인적으로 볼 사람이 있을 것 같다.

 

Posted by 열심히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