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월 23일, 수요일) 아침 신문을 보다가, <대한민국 해군과 현봉학 박사를 기억하라>라는 제목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글을 읽었다.
故 현봉학 박사를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현봉학 박님의 회고록이 1999년도에 출간된 것을 보면, 그즈음으로 생각이 되어진다.
현봉학과흥남대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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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현봉학 (경학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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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떳다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

노래에는 그 시대상이 묻어난다고 하는데, 위 <굳세어라 금순아>에 나오는 바람찬 흥남부두가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곳이다.

때는 1950년 12월 24일. 흥남부두에서 피난민을 실은 마지막 배가 떠났고, 회고록에 따르면, 팔천여개의 포탄이 부두를 향해 날라갔고, 추위에 얼어서 남겨둔 다이나마이트 사백 톤(!)과 천 파운드 포탄 오백 개도 폭격을 맞아 폭발했다고 한다. 엄청난 폭발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는 상선 매러디스 빅토리 號가 있었다. 12월 23일 출발 후, 약 3일간의 항해 후, 25일 거제도에 도착했을 때, 피난민 총원은 5명이 늘었다고 한다. 2000-3000명 탑승 가능한 상선에 14000명이 탑승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명의 희생도 없이 5명의 생명이 더 태어났다고 한다. 선원들은 그들을 김치 원, 투, 쓰리, 포, 파이브라고 불렀다고 한다. (관련기사:
중일일보 클릭)

작년 2010년은 한국전쟁 60주년으로 참으로 많은 행사들이 있었고, 신문이나 매체에서도 한국전쟁을 많이 조명했다.
수많은 전투와 작전들이 설명되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와 관련된 책들도 몇 권 구입했다. 뒤에 이렇게 기회가 되면 다시 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사실 흥남 대탈출은 1950년 겨울 참전한 중공군에게 밀리기 시작한 연합군이 철수를 결정하면서 시작된 작전이었기에, 그 중심에 있는 미 해병대의 장진호 전투와 같이 소개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시기는 이미 지났고, 뜬금없이 포스팅하기도 뭐했다.
오늘 마침 이 글을 계기로 난데없는 포스팅을 한다.

기사 원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22/2011032202672.html

위 글에 언급된 '흥남철수'와 관련된 '아, 흥남(가제)'는 최근 2년간의 시나리오 작업이 끝났고, 제작비가 200억이 들어갈 블록버스터급의 영화가 제작될 거라고 하는데, 달리기가 생각나는 것은 '오! 장진호(Oh! Chosin)(가제)' 미 해병대 예비역 대위가 만드는 영화가 생각나는 것을 왜일까? 이건 찾아보니, Forgotten War(잊혀진 전쟁)이라고 합니다. [조선일보 만물상 2009년 8월 10일]

장진호 전투와 흥남 대탈출을 연출한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동아일보 2011년 2월 15일 화요일

흥남대탈출 작전이 있기에는 물론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故 현봉학 박사님의 노력이 제일 컸다고 평가되어진다.
아쉽게도 인물 정보 첨부란에서는 박사님의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서 박사님의 간략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423316

회고록이 나올 당시에는 아주대학교 병리학교실을 이끄셨는데, 언제 미국으로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다.
1922년 6월 23일 함경북도 성진 生
2007년 11월 25일 미국 뉴저지주 卒

당시 미 10군단 사령관 민사부 고문으로 있던 박사는 알몬트 소장을 설득해서, 어떻게든 피난민을 남쪽으로 피난시키고자 노력했고, 거리에 해병대 포니 대령을 만나, 훌륭한 산개작전을 펼쳤고, 거기에 매러디스 빅토리 호를 포함, 여러 상선 및 군함들이 피난민을 10만명 가량을 성공적으로 피신했다는 이야기가 흥남철수작전의 끝이다.

그후, 매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는 기네스북에 기재되었다고 하고, 작년에 뮤지컬 '생명의 항해'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이 뮤지컬을 하다가, 배우 이준기 씨가 이마를 꼬매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거제도에 흥남 철수작전의 세 영웅을 기리는 동상이 섰다. 알몬트 소장, 포디 대령, 현봉학 박사.
아.. 매러디스 빅토리 호의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이 작전 후, 가톨릭 수사가 되어, 기도생활을 하시다가 선종을 하셨다.
이 분을 기리는 사업은 다음에,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기적의 배 '메리너스'를 보면서 거론되겠다.

예전에 거제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부모님과 코레일 관광으로 1박 2일 코스인가? 야간기차를 타고 갔다가 돌아왔나? 아니면 차를 타고 갔었나?? 헷갈린다. 거제도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이 수용소가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풀어줬다는 곳이었는데... 다시 거제도를 찾을 일이 있으면, 이 동상을 먼저 찾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늘 읽으면서, 흥남대탈출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역활을 볼 수 있었네요. '금강산함'이라는 배의 존재를 오늘 알았습니다. 우리 해군도 예전부터 작전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리비아에서 교민을 구출하고 난 뒤, 다시 작전에 투입된 대한민국 최영함이 쌩뚱맞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네요.

마지막으로 신문에 난 포니 대령의 증손자 이야기는 덧붙입니다.

 

Posted by 열심히 달리기